Sun Flower. 01.: 잡덕벨로의 사고친 블로그 (2024)

*Rex Orange County 의 Sunflower를 들으면서 떠오른 글입니다.

알람이 울리기 전 정확히 1분 전에 떠진 눈. 놀랍도록 정확한 박자로 첫번째 알림음이 울림과 동시에 딘의 검지손가락은 알람 정지버튼을 눌렀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면 초록색 눈동자가 흰 천장을 건조하게 받아들였다.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집어든 휴대전화에는 밤새 시차가 다른 지역에서 쏟아져 온 메세지들이 가득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딘 스미스씨.' 딘은 그 말에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무감각한 손길로 메세지를 쓸어 읽어나갔다. 발걸음은 적절하고 딱 맞는 박자로 화장실로 향해서 습관처럼 비어있는 손을 뻗어 칫솔을 집었다.

거울 속에 자신과는 별로 친하지 않아 딘은 스마트폰 속에 과몰입된 사람처럼 방금 전 딱 몇 분 전까지는 수면에 기울어있던 자신을 빠른 속도로 현실로 불러들였다.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내쉰다. 아름다울 정도로 정확한 박자로 이를 닦고 몸가짐을 정리하고 돌아와 창을 열고 침구를 정리하고 어젯 밤 꺼내놓은 옷을 곁눈질로 점검한 뒤 커피를 내렸다. 메세지들을 대강 확인한 뒤에는 이코노미스트 헤드라인을 읽는 시간이 이어졌다. 오늘의 주가를 예상하는 에디터의 사려깊은 글을 확인하는 딘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그래프를 훑어나갔다. 커피향은 고소하고 달콤한 편이었지만 딘은 그것을 감사하기 보다는 그저 그것의 효과를 온통 받아들이는데에 집중했다. 지난 몇 일간은 긴급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수면시간이 평균보다도 훨씬 적은 편이었다.

자세히 거울을 들여다 본다면 어쩌면 눈동자에 서린 핏줄을 발견할지도 몰랐다. 거기에 눈하나 꿈쩍할 지는 과연 알 수 없었지만 딘은 어느새 많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여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도록 하는데에 놀랍도록 익숙해져 있었고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넥타이를 조여매 올리고, 주름을 최소화한다는 최신 기술이 반영된 신소재 옷감으로 된 셔츠를 다시 한 번 단정히 정리하고 서류가방을 들고 차 키를 쥐고 걸어나갔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이어폰에서는 오늘의 아이튠즈 팟캐스트로 고른 역사 강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딘은 세상에 있어 많은 것이 균형잡힌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고, 인문학은 그 균형을 이어주는 데에 아주 적합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이천 년 전의 로마에서 이미 6층짜리 아파트 형식의 주거지가 있었다는 놀라운 지식을 편안하게 읊어주는 그런 교양 강의들을 좋아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시계를 보면 언제나처럼 일곱시 이십분. 정확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시간이었다.

그런 것들이 딘에게는 꽤 마음에 드는 일들이었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좋았다. 아주 적당한 엔진소리가 경쾌하고 당연했다. 그리고 출근. 산재한 이메일 순서대로 처리해 나가는 서류더미. 딘은 아주 빠른 리듬에 맞추어 탭댄스를 추는 댄서처럼 유연하고 능숙하게 일을 해결해 나갔다. 이제 꽤 직급이 높아진 지금 앞에서 대놓고 칭찬을 거듭해주는 상사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딘은 자신이 유능하고 효율이 좋은 사람이란 걸 자각하고는 있었다. 그저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기는 했지만. 딘의 하루는 만족스러웠다. 사무실로 배달시킨 아몬드가 잔뜩 들어간 치킨가슴살 샐러드를 씹으며 디톡스 음료로 마른 입술을 축여나가고 그러면서 동시에 서부 저 먼곳의 사업장에 들어가야 할 재고품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전화를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전화 끝에 딘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농담을 했고 반쯤은 만들어냈을지 모르지만 어색하지 않도록 그 대화를 마무리 하기 위해 하하하. 하고 아주 유능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오후 1시 29분 34초에 딘의 입가에 걸린 그 웃음이 오늘 딘이 처음 지은 미소였고 딘은 그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고 그럼에도 딘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딘 스미스의 삶은 완벽했다. 성공한 사회인의 삶. 고급 맨션이 즐비한 번화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자신의 넓고 깨끗한 아파트. 마음에 드는 연비를 가진 짙은 남색의 세단. 동기 그 누구보다도 빨랐던 승진과 만족스러운 급여. 때로 고객과 혹은 상사와 함께하는 골프는 그의 취미였다. 딘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주제에 대하여 딘이 자세히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회장님의 막내 아들.

딘은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회장님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는데 셋 모두가 경영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아주 큰 고민이라는 소문을. 첫째아들은 모험가로 세계의 모든 위험하고 힘들고 어려운 지형에 도전하는 것이 그 삶의 목적이라 그 소명을 공유하는 여성과 결혼하여 지금은 사막 어딘가에 도구 없이 오롯이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건너는 여정중에 있다던가. 아니면 북극 어딘가에 갔다던가 그런 상황이었고 둘째아들은 딘보다도 훨씬 심각한 워커홀릭의 외과의사. 일 년에 한 번 가족 모임에 얼굴을 들이밀까 말까 한데다 대어놓고 비혼까지 선언해 회장님의 양 미간 주름 증가에 아주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던 듯 했다. 그리고 그 막내아들.

분명 올해 스무살이거나 스물 하나이거나. 아직 대학생이 분명할 그 아이는 경영을 전공하길 간절히 바랐던 회장님의 소원을 당당히 거슬러 법학과를 진학했다고 했다. 딘이 알고있는 건 그 정도였다. 회사에서 갖는 모임 자리에서 적당히 사람들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가십에 가담하는 척 관심있는 척 궁금한 척 하며 들어 어쩌다 모으게 된 그 정도의 정보. 그래도 딘 스미스는 자신의 기억력을 꽤 믿는 편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기이한 기분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아, 물론 아주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 정도까지 최고 경영진의 신임을 받고 미래를 보장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다만 딘은 고개를 조금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무살. 한참이나 세어본 적 없었던 자신의 나이를 조금 셈 해보고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 했다. 그리고 피식 웃음지었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부정할 수 없이 샘 웨슨으로 인해 지은 딘 스미스의 첫번째 미소였다. 딘은 생각했다. 어차피 안될 결혼인데 나가서 좋은 인상이라도 남기고 오자. 그런 어린 친구가 뭐가 모자라서 삼십이 훌쩍 넘은 부장급 직원과 결혼한다는 말인지. 절대 성사될 리 없으니 그냥 회장님 제안과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진행하기 어렵겠습니다. 예의바른 웃음과 적절한 농담 그런 것들이면 딘은 충분이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회장님 측에서는 아주 진지한 모양으로 딘에게 샘의 프로필과 함께 샘이 아직 어리지만 분명 큰 몫을 해낼 아이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 딘, 자네와 꼭 짝을 지워 좋은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네. 그런 편지를 보냈지만 딘은 편지만 읽어보고 프로필은 꺼내보지도 않았다. 길어야 30분 정도라고 생각했다. 몇 일이나 푹 자지 못한 자신의 얼굴은 꽤나 평소보다도 더 나이든 태가 날 것이 분명하고 그것 뿐 아니어도 이미 열살 넘게 차이나는 자신과 굳이 오랜 시간을 보내려고 할 만큼(특히 이 자리가 정략결혼을 목표로 하는 자리라는 걸 고려해 볼 때) 요새 젊은 친구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딘은 식사 자리가 아닌 어중간한 시간대를 골라 차를 마시자고 권했고 분명 한 20분 뒤면 이 자리에서 해방되어 다시 사랑해 마지 않는 일이 잔뜩 쌓인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터였다.

딘은 피곤한 자신이 업무가 아닌 것에 시간을 보내는 데에 대하여 자신에게 조금 응석 부릴 모양으로 카페모카를 시켜 달짝지근한 음료를 입에 머금고 조금 미소지었다. 그 순간이었다.

"딘 스미스씨?"

하는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것은.

그래서 샘 웨슨이 본 것은 바로 그랬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샘을 위해서 신이 만들어 준 것만 같은 이 사람이 반짝이는 두 눈을 하고 행복한 듯 한 표정으로 입술을 혀로 살짝 핥고 다시 한 번 입술이 호선을 그어 미소지었던 그 모습. 그것은 벼락과도 같이 샘의 온 정신을 지배했다.

"샘 웨슨씨인가요? 반갑습니다. 딘 스미스입니다."

샘은 그 순간 말을, 언어를 그리고 딘스미스가 없던 공허한, 그러나 그 공허함을 몰랐던 그 나날들을 잃었다.

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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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Neely Le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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